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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오 퍼디난드는 잉글랜드 내 볼플레잉 디펜더들의 '오래된 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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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jpg [칼럼]리오 퍼디난드는 잉글랜드 내 볼플레잉 디펜더들의  \'오래된 미래\'였다.



 

 현대축구에서 센터백은 더이상 그저 상대방 어태커의 볼을 끊어내는 선수가 아닙니다. 2020년 지금 센터백에게 요구하는 능력은 다양화되었습니다. 끊임없이 노출되는 뒷공간을 커버하기 위한 빠른발, 고도로 정교화되어가는 세트피스를 대처하기 위한 공중 장악력, 빌드업하기 위해 필요한 유려한 볼테크닉과, 롱패스를 위한 킥력까지, 정말 다양한 스킬 셋(skill-set)을 갖춰야합니다.



 오늘날에는 다비드 루이스, 라포르테, 반다이크 같은 선수들이 많은 스킬 셋을 갖춘 선수들로 유명하죠. 그러나 과거 EPL 내에서 센터백은 그저 제한된 기술을 가진 채 상대 공격수와의 직접 대결만을 하는 포지션 이었습니다. 그래서 빠른 발로 뛰어다니면서 볼을 잘 다루는 센터백이란 너무나도 낯선 존재였다.


 이런 당대의 시각을 잘 보여줬던 예시가 바로 굴리트의 첼시였습니다.  ac밀란시절 마라도나와 라이벌리를 구축하기도 했던 굴리트는 1995년 첼시로 이적했습니다. 이 이적을 주도한 사람은 당시 첼시의 감독이었던 글렌 호들이었습니다. 글렌 호들은 PSV 시절 굴리트가 스위퍼로서 뛰었던 모습을 기억하고 첼시에서 이 역할을 수행해달라는 제안을 제시했고, 굴리트는 이러한 제안에 기쁜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첼시로 이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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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이적한 첫 시즌 굴리트는 첼시에서 감독이 지시한대로 당연히 센터백 포지션에서 플레이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고 굴리트는 자신에게 날라온 공중볼을 따낸 다음 자신이 평소 하던대로, 측면에 있던 센터백 파트너 마이클 두베리를 향해 패스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패스를 본 관중들은 그야말로 경악을 감추지 못했는데요. 이 패스를 받은 두베리 역시 ‘이게 뭐야!’하면서 바로 사이드라인 밖으로 공을 차버렸습니다.



 두베리나 관중들이 이렇게 놀란 이유는, 잉글랜드 축구계에 있어 센터백이 공을 돌리는 행위는 한번도 본적도 들은적도 없는 굉장히 낯선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잉글랜드 축구계는 센터백이 서로 볼을 돌리는 행위를 하선 안되는 플레이로 간주했고 금기시 해왔습니다. 그렇기에 관중이 놀란 것은 물론이고, 두베리 역시 어쩔 줄 몰라하면서 바로 클리어링을 했던 것이죠.



 이러한 모습은 굉장히 잉글랜드 축구계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이러한 굴리트의 모습은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졌지만 이내 잉글랜드 내에서도 필요한 모습이라는 것이 밝혀졌죠. 



 90년대 중후반 442의 대안으로 352가 PL내부에 유행했습니다. 왜 442의 대항하기 위핸 대안으로 352가 유행했던 것일까요.당시 피엘에서 유행하던 2톱을 상대하기 위해서 단순히 두명의 수비수로는 부족하다고 느꼈고 3명을 수비수로 두면서 상대방과의 수적 우위를 가져가기 위함이었죠. 문제는 후방에 투박한 센터백 숫자 세명을 두다보니 앞선에 선수들이 부족하게 되었고 거기다 볼전진 역시 잘 안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352 시스템이 제대로 가용 되기 위해서는 굴리트처럼 3백 수비수 중 한명이 발밑이 좋고 패스를 잘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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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러한 유형에 적합한 잉글랜드 자국 선수가 리오 퍼디난드였습니다. 리오 퍼디난드는 3-5-2 시스템에 한쪽 수비수로 적합한 유망주로 떠올랐습니다. 굴리트를 지휘한 적 있는 글렌호들은 독일의 잠머처럼 볼을 가지고 앞으로 나올 선수가 잉글랜드에 필요하다고 했고, 리오 퍼디난드가 이 역할을 해줄 선수라고 생각했습니다.



 리오 퍼디난드가 동시대의 다른 잉글랜드 센터백에 비해 부드러운 발놀림을 보였던 것은 어쩌면 어린 시절 발레를 했었기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11살 발레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또한 공격형 미드필더로 축구를 시작했다는 걸 고려해보면 그가 어렸을때부터 발을 활용하며 볼 다루는 테크닉이 좋았던 점을 알 수가 있죠.



https://www.youtube.com/watch?v=PTiG5xPdMO4



 심지어 리오는 어린시절 동네 페켐에서 길거리 축구를 주로 했는데 거기서 별명에 페켐바우어이기까지 했습니다.



 실제로 리오 퍼디난드는 한 인터뷰에서 “난 중앙 미드필더가 되고 싶었다. 골을 넣고 스타가 될 수 있는 포지션을 원했다. 센터백은 그다지 매력적인 제안은 아니었다.”라고 회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리오 퍼디난드를 그저 공을 잘 다루며 패스를 잘 하는 수비수로만 기억한다면, 그가 보여준 스피드를 완전히 간과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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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발빠른 스프린터인 no9들이 이피엘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덩치큰 센터백들의 후방을 괴롭혔죠. 


 그렇기에 이를 대적하기 위해 역시 발빠른 센터백들이 등장했죠. 183 cm의 작은키를 가진 프랑스 출신 미카엘 실베스트르나 리오처럼 미드필더 출신이었다가 센터백으로 포지션변경한 콜로투레가 그 예시였습니다. 



 리오 퍼디난드의 말년 모습을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굉장히 낯선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리오퍼디난드는 발빠른 상대 스피드스타들을 역시 같이 빠른발로 제압하던 수비수였습니다.



 리오퍼디난드가 맨유로 입성했을 때 퍼거슨은 리오 퍼디난드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우리 모두 리오 퍼디난드가 가진 발밑 테크닉과 피지컬적인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어렸을때부터 이 능력을 다 갖추고 있었다. 그는 3~4년 안에 정말 놀라운 능력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다.”



라고 얘기했을 정도로 리오퍼디난드는 그가 가진 공 다루는 테크닉과 더불어서 피지컬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선수였습니다.



 퍼디난드가 가진 재능은 잉글랜드 내에서 엄청난 평가를 받았고 이는 이적료로도 바로 나타났죠. 그는 웨스트햄으로 프로를 시작했지만 1800만 파운드 약 264억원에 이적했고, 나중에 리즈가 재정적 위기를 겪어서 맨유로 이적할때에는 3000만 파운드 약 440억원으로 당시 영국 축구 최고 이적료 기록을 갱신하기도 했습니다. 



 맨유로 이적해서는 퍼거슨 전술아래에서 4-4-2체제에서, 더 이상 3백의 일원이 아닌 두명의 센터백과 함께 뛰게되었습니다. 빠른발을 가지고 있었지만 3백에서 편하게 하던 리오는 4백아래에서 한명의 센터백 파트너와 뛰게 되었고 더 높은 수비수능력치를 요구받았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한 끝에 그 위치에서도 잉글랜드 최고의 수비수 중 한명이라고 평가 받을 정도로 훌륭한 활약을 보였습니다. 



 맨유 시절에는 6번의 리그 우승 2번의 리그컵 1번의 챔피언스리그를 들어올리는 영광의 시기의 주역이었죠. 


 



 리오 퍼디난드는 현재 PL내에서 다양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볼플레잉 디펜더들의 선조격이면서 오래된 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